조희연(趙羲淵)은 1874년 무과에 급제한 뒤 무관으로 근무했다. 1894년 갑오농민운동 때, 정토군(征討軍)을 조직해서 초토사 홍계훈, 양호순변사 이원회 등에게 군량 및 군비 등을 지급하여 파송하였다. 집권세력인 명성황후 세력이 청나라 군대를 청해서 농민군을 진압하려고 하자 조희연은 이를 반대했고, 청군의 개입을 빌미로 일본군이 명성황후를 실각시키고 흥선헌의대원왕을 추대할 때 여기에 가담했다. 친일 정권이 설 때마다 계속 등용되었다. 갑오개혁 때는 장위사(壯衛使)에, 김홍집의 친일 내각에서는 군무대신 서리, 군무대신, 군부대신에 각각 임명되었다.아관파천으로 일본에서 10여 년간의 망명 생활을 한 끝에 1907년 귀국하여 궁내부 특진관과 훈포장을 담당하는 표훈원 총재를 지냈다. 1910년 8월 경술늑약 불법 늑결 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고 총독부 중추원의 부의장에 임명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