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대군(月山大君)은 왕세자로 책봉된 아버지가 1457년 죽자 세조의 사랑을 받으며 궁중에서 자랐다. 1460년 월산군에 봉해졌고, 1468년 동생인 성종과 함께 현록대부(顯祿大夫)가 되었으며 1471년 월산대군으로 봉해졌다. 3월 성종의 장인인 한명회(韓明澮) 등 권신들이 종실의 대표격인 구성군(龜城君) 준(浚)을 제거하고 그들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월산대군을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책록하였다. 왕위계승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월산대군은 이처럼 권신들의 농간을 겪게 되자 양화도(楊花渡) 북쪽에 망원정(望遠亭)을 짓고 풍류로 여생을 보냈다. 1473년 덕종(德宗)이 추존되어 부묘(祔廟)되기 전에 덕종(德宗)의 별묘를 세우고 봉사(奉祀)했으며 어머니인 인수왕후(仁粹王后)의 병을 간호하다 죽었다. 부드럽고 청아한 문장을 많이 지어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여러 편이 수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