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는 독립협회 주최로 1898년 3월 10일 종로에서 약 1만 명의 한성 시민이 참여하여 개최되었다. 쌀장수 현덕호(玄德鎬)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백목전 다락 위에서 여러 시민들이 주로 당시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 요구, 한러은행 개설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면서 러시아의 군사교관과 재정고문의 철수를 요구했다. 이는 대한제국 정부의 러시아 고문단 철수와 한러은행의 철폐조치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그 후 거의 날마다 열린 대중집회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다루어지는 안건마다 그를 담당하는 총대위원이나 대표위원을 직접 뽑아 회의 결의사항을 집행하는 직접 대표제와 같은 민주적 운영방식으로 더욱 활발해졌으며 독자적인 민중운동으로 성장해갔다. 1898년 10월 29일 개막연설은 백정 박성춘(朴成春)이 했고,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발표했다. 외국에 의존하지 말고 전제황권을 공고히 할 것, 이권 양여와 차관 도입, 외국 군대의 지원, 외국과의 조약을 각부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으로 서명하여 시행할 것, 전국의 재정은 모두 탁지부에서 관할하고 예산과 결산은 인민에게 공포할 것, 중죄인은 공판에 회부하되 자복한 후에 재판할 것, 칙임관은 황제가 정부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 임명할 것, 법률을 시행할 것으로 민권신장이 그 주요내용을 이루는 헌의 6조(獻議六條)를 결의하여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