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원(中樞院)은 1894년 갑오개혁 때 설치된 내각의 자문기관이었으나, 경술늑약 불법 늑결 이후에는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에 적극 협력한 친일파들이 한일 강제 합병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기관이 되었다.총독부 중추원(中樞院)은 1910년 9월 30일자로 공포되고, 10월 1일자로 시행된 총독부중추원관제(總督府中樞院官制)에 의하여 설치되었다. 1910년 12월 12일 중추원의사규칙(中樞院議事規則)이 제정되었고, 1918년 1월 19일 중추원사무분장규정(中樞院事務分掌規程)이 제정, 공포되었다. 조선반도사 편찬사업을 1915년 7월 착수하여 이완용 등 고문 11명을 조사위원으로, 찬의 류정수(柳正秀) 등 15명을 실무자로 선임하고 미우라·이마니시·구로다를 편집 주임으로 위촉하였다. 중추원은 의장, 부의장, 고문 15명, 찬의(贊議) 20명, 부찬의(副贊議) 35명, 서기관장, 서기관 2명, 통역관 3명, 속(屬) 3명을 둔다. 의장은 총독부 정무총감으로 보한다. 친일파들에게 나눠준 유일한 정치적 관직인 부의장에는 김윤식(훈2등 자작), 고문에는 이완용(훈1등 백작), 박제순(훈1등 자작), 고영희(훈1등 자작), 조중응(훈1등 자작), 이지용(훈1등 백작), 권중현(훈1등 자작), 이하영(훈1등 자작), 이근택(훈1등 자작), 송병준(훈1등 자작), 임선준(훈1등 자작), 이재곤(훈1등 자작), 이근상(훈2등 남작), 이용직(자작), 조희연(남작)이 임명되었다.1939년 박상준이 참의에 임명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