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우(洪鍾宇)는 1890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다. 기메박물관에서 일하면서 춘향전, 심청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1893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 도중 일본으로 갔으며 갑신정변에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해 있던 김옥균과 박영효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김옥균과 박영효를 저격하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이일직(李逸稙)을 만나 그의 사주를 받고 급진 개화파의 일원으로 가장, 김옥균에게 접근하였다. 이듬해 상하이에 있는 호텔 뚱허양행(東和洋行)에서 리볼버권총으로 김옥균을 저격했으며 청나라 관원 경찰에 체포, 구금되었으나 조선의 석방 교섭으로 풀려나 귀국하였다. 189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리(校理)가 되었으며, 고조 광무제의 총애를 받으며 신임을 얻어 요직에 올랐다.1898년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개최하며 중추원 관제 개편과 입헌군주제 개혁을 주장하자 이기동(李基東), 길영수(吉泳洙) 등과 함께 황국협회를 조직, 보부상을 동원하여 독립협회의 활동을 방해하였다. 홍종우는 고조 광무제에게 외국군대 철수와 방곡령 실시,상공업 육성책,외국공사의 내정간섭 반대 등을 주장하는 상소를 11 차례 올렸다. 1903년 친일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득세를 하면서 홍종우는 주요 관직에서 밀려나 제주도 목사로 좌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