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은 1540년(중종 35)에 일선(一禪)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그뒤 부용영관(芙蓉靈觀)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공부에만 전념했다. 1549년(명종 4) 승과에 합격했으며,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에 올랐다. 1556년 선교양종판사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를 버리고 금강산·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선수행과 후학 지도에 전념했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났을 때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선조의 직접 신문에 의해 무죄가 입증되어 석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에 격문을 보내어 의승군(義僧軍)의 궐기를 호소했다. 순안 법흥사(法興寺)에서 문도 1,500명으로 승군을 조직했으며, 평양탈환작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선조가 8도16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에 임명하자 유정(惟政)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선조가 한성으로 돌아오자 승군을 이끌고 나가 호위한 후 승군장의 직에서 물러나 다시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선조는 국일도 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라는 존칭과 함께 정2품 당상관의 작위를 내렸다.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앉은 채로 입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