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安平大君)은 1428년 안평대군에 봉해졌다. 이듬해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을 닦았다. 1438년 왕자들과 함께 함경도에 설치된 6진(六鎭)으로 가서 변방의 경계 임무를 맡으면서 야인(野人)들을 토벌했다. 1450년 문종이 즉위한 뒤 황표정사(黃票政事:왕자들이 추천한 사람 가운데 왕이 적임자를 골라 임명하던 인사제도)를 장악하고 측근의 문신들을 요직에 앉히는 등 조정의 배후 실력자로 등장했다. 1452년 단종 즉위 이후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 문신·학자 세력과 제휴하여, 수양대군과 권력을 다투었다. 1452년 7월 수양대군은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외교적 위상을 높이고, 돌아온 뒤에는 황표정사(黃票政事)를 폐지했다. 이에 안평대군은 잃어버린 권력의 회복에 힘써, 이징옥(李澄玉)으로 하여금 함경도 경성에 있는 무기를 한성으로 옮기게 하여 무력을 기르는 한편 1453년 9월 황표정사를 다시 실시하게 하는 데 성공했으나 다음달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김종서 등을 제거했으며 안평대군 자신도 더불어 반역을 도모했다 하여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후에 귀양지가 교동(喬桐)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사사(賜死)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