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람(權擥)은 1450년(문종 즉위) 향시(鄕試)와 회시(會試) 및 전시(殿試)에 모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이듬해 집현전교리로서 역대병요(歷代兵要)의 음주(音註) 편찬에 참여했는데, 이때 수양대군과 가까워졌다. 그뒤 일찍부터 깊이 사귀어왔던 한명회(韓明澮)를 수양대군에게 천거했으며, 그와 함께 양정(楊汀)·홍달손(洪達孫)·류수(柳洙) 등의 무인들을 포섭했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 등을 제거하고 세조의 즉위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이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봉해졌다. 이어 승정원의 여러 벼슬을 거쳐, 1455년(세조 1) 이조참판이 되고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에 올랐다. 세조의 즉위를 알리기 위한 사신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왔으며, 이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봉해졌다. 이어 이조판서·대제학·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등을 거쳤고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졌다. 1456년과 1457년 김문기(金文起) 등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된 사람들의 토지를 하사받았다. 1458년 5월에는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수찬관(修撰官)으로 국조보감(國朝寶鑑)을 편찬했으며, 대제학·우찬성·좌찬성·우의정 등을 두루 지낸 다음 1462년 5월 좌의정이 되었다. 이듬해 병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나면서 길창부원군에 봉해졌다. 같은 해 9월에는 동국통감(東國通鑑) 편찬에도 참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