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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외교력 지닌 정치가 명성황후

명성황후(明成皇后)는 인현왕후의 사가로서 아버지 민치록의 소유의 한성 감고당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홀어머니를 섬긴 외동딸이므로 외척으로 인한 폐해가 없으리라 기대한 흥선헌의대원왕의 뜻에 따라 초간택과 재간택, 삼간택을 거쳐 1866년 음력 3월 6일 왕비로 최종 간택되어 운현궁에서 지내다가, 음력 3월 20일 왕비가 되었다.아버지 민치록은 의정부 영의정에게 추증되었고, 아버지의 본부인 해주 오씨는 해령부부인에 추증되었으며, 생모 감고당 한산 이씨는 한창부부인의 작위를 받았다. 1874년 음력 2월에 태어난 아들 척(坧)이 이듬해 음력 2월 세자가 되었다.1873년 11월 고조 광무제가 친정을 시작하자 명성황후는 민씨 집안 사람을 조정의 요직에 앉혔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는 등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김홍집, 어윤중, 김윤식 등 개화파를 지원하였다. 개화사상가인 박규수(朴珪壽)를 발탁하여 우의정에 등용하여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게 하고 신사유람단과 영선사를 일본과 청에 파견하여 신식무기·공업 등을 학습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황쭌센의 조선책략의 연미론(聯美論)을 접한 명성황후는 1881년 김윤식이 영선사로 청에 갈 때 비밀리에 호출하여 밀명을 내려, 청나라에 조미수교를 주선, 후원해 줄 것을 부탁했고, 이동인(李東仁)을 불러들인 뒤 그에게 밀명을 내린 뒤 일본에 파견, 주일청국공사 하여장(何如璋)에게 조미수교를 도와 줄 것을 부탁하였다.

1882년 구식 군대의 차별대우에 대한 불만이 급여로 지급되던 곡식의 횡령으로 폭발해 일어난 임오군란으로 민씨 일족이 살해당하였다. 임오군란 당시 구식 군대의 추대로 흥선헌의대원왕이 재집권하고, 명성황후는 궁녀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궁녀 행세를 하며 홍계훈(洪啓薰)의 등에 업혀 이천, 장호원을 거쳐 충주로 피신했다가 여주로 숨었다. 흥선헌의대원왕은 명성황후가 죽었다고 조작 보고를 올리고 입던 옷을 관에 넣고 장례를 치르기까지 하였으나 청나라의 군사적 압력으로 임오군란은 진압되고 흥선헌의대원왕이 청나라의 톈진으로 압송된다. 1개월 만에 고조 광무제는 복권하였고, 명성황후는 한성으로 돌아왔다.1884년 음력 10월 17일 갑신정변으로 조정의 실력자였던 민씨 척족 상당수가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의 살생부에 올라 살해되었다. 조카 민영익만 미국인 의사인 호러스 뉴턴 앨런의 치료로 생명을 건진다. 명성황후는 일본과 급진 개화파를 경계하여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청나라의 지원을 요청해서 개화당을 붕괴시켰으며,이후 청나라의 횡포에 대응하여 러시아에 접근했으나 영국이 군함을 보내 1885년 거문도를 강제 점령하고 청나라도 흥선헌의대원왕을 돌려보냈다.청일전쟁을 일본이 승리한 직후 러시아·독일·프랑스가 일본에 간섭하여 청일전쟁에 승리하여 얻은 이권을 내놓게 한 삼국간섭으로 일본은 조선에서의 지위도 흔들렸다. 명성황후는 일본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러시아의 힘을 이용하려 하였다.

이토 일본 총리는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를 사주하여 1895년 음력 8월 20일 낭인들을 동원하여 경복궁으로 침입하였으며 건청궁 옥호루에서 피신하는 명성황후를 살해하여 시신을 녹산에서 소각하였다.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지휘한 일본 낭인들은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경복궁으로 잠입, 명성황후의 암살을 주도하였으며 명성황후의 암살 과정에서 일본군이 양성한 훈련대의 1대대장 이두황, 2대대장 우범선, 3대대장 이진호(李軫鎬) 등이 일본 낭인에 협력했다. 일본 정부의 명성황후 살해사건은 고조 광무제가 아관파천을 결정하게 하였고, 을미독립운동의 계기가 되었다.명성황후는 살해된 후 경기도 양주 동구릉에 능 조성 공사를 시작하여 능호를 숙릉(肅陵)이라고 하였다.1897년 음력 1월 6일 시호를 문성왕후(文成王后)라 하고 능호는 홍릉(洪陵)으로 고쳤으나, 시호 "문성(文成)"이 정조의 시호와 같다 하여 음력 3월 2일 시호를 명성왕후로 고쳤고 같은 해 10월 대한제국의 건국과 함께 명성황후(明成皇后)에 추존되었으며, 국장을 치르고 청량리에 장례되었다가 경기도 남양주 홍릉으로 개장되었다.영국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명성황후를 지성미로 얼굴이 빛나는 지식인이자 우아한 자태를 가진 귀부인으로, 윌리엄 프랭클린 샌드는 명성황후를 뛰어난 학문과 지성적인 강한 개성과 굽힐 줄 모르는 의지력을 지녔다고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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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 날(4월7일)에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대표,‘코로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며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 대표는 “총선 D-8일인 오늘(4월7일)이 보건의 날인데 코로나19로 정부 기념행사가 연기 된 것”에 유감을 표하고 “오히려 ‘1주일을 보건의 날 기념 건강주간’으로 정해 대대적인 보건 관련 행사를 벌여 코로나로 인한 국민의 보건의식에 경각심을 일으켜야 한다”며 “이 기회에 전 국민이 손 씻기 등 깨끗한 위생생활을 습관화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 시키는 행위들을 반성하고 불편하더라도 친환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들과 인터뷰 하는 허경영 대표> 허대표는 “코로나는 인간의 욕망으로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인간들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고 했다. 허대표는 코로나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즉시 유튜브 공개 강연이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는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고 수시로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제안한 ‘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 18세 이상 국민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는 공약이 법으로 제정될 수 있도록 과반수 151석 이상을 국가혁명배당금당에 몰아 달라고 했다. <허대표의 기자회견을 열심히 경청하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의 당원들> 김동주 국가혁명배당금당 기획조정실장은 “코로나가 인간의 끝임 없는

지금이라도 외국인 입국을 차단하고 대한민국 국민들과 의료진을 보호하라.이은혜 (순천향대 의과대학 교수)
대한민국의 의료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국민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외국인 입국을 차단하라 해외에서 유입된 감염성 질환에 대한 방역관리의 기본 원칙은 ‘해외 유입 차단’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의 7차례 권고를 무시한 채 소위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중국발 입국을 차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였고 이제는 거꾸로 중국의 33개 성(省)과 시(市), 그리고 18개 자치구에서 각기 다른 기준으로 한국인 입국 시 격리 조치를 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를 선두로 유럽 전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애초에 중국발 입국을 막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는 이제 와서 유럽발 입국을 차단할 명분이 없다. 궁여지책으로 22일 0시부터 유럽발 입국자에 대한 ‘특별입국절차’로서 코로나바이러스-19 검사를 의무화했다. 시행한 첫날인 22일 입국한 1,442명 중에 무려 152명이 의심 증상을 보였고, 23일 신규 확진자의 21.9%가 유럽 등에서 입국한 ‘사람’들이며, 이는 전보다 4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박능후 장관 말대로 문 열어놓고 모기 잡겠다는 것인데 온 국민이 모기에 왕창 뜯겨서 죽어 나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