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洪大容)은 1765년(영조 41년) 홍억(洪檍)이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갈 때 군관(軍官)으로 수행, 3개월여를 북경에 묵으면서 엄성(嚴誠), 반정균(潘庭筠), 육비(陸飛) 등을 만나 담론하며 경의(經義), 성리(性理), 역사, 풍속 등에 대하여 토론했다. 천문학·지리학·역사 등에 관한 지식을 쌓고 서양 문물을 배우고 돌아왔다. 천주당(天主堂)에서 서양 문물을 견학, 학습하고 독일 사람으로 청나라의 흠천감정(欽天監正)을 하는 할레르슈타인과 흠천감 부감(副監) 고가이슬을 만나 면담했으며, 청나라 관상대(觀象臺)를 여러 번 방문, 견학하여 천문지식을 습득해 오기도 했다. 홍대용의 북경 방문은 당시의 여러 북학파 학자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실학의 도입에서 그 선구적 업적이 크다.귀국하여 천주교와 천문학의 이론을 기록한 유포문답과 과학 사상을 담은 의산문답을 지었다. 지구(地球)의 자전설(自轉說)을 설파하였으며 토지 등을 균등하게 분할하는 균전제(均田制), 부병제(府兵制)를 토대로 하는 경제정책의 개혁을 주장했으며, 특히 실사구시 정신에 따라 신분 제도 개혁을 위해 과거제를 없애고 공거제(貢擧制)에 의한 인재를 고루 등용하며, 신분 등에 관계없이 8세 이상의 모든 아동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과감한 개혁을 주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