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 미국인 친구는 꽤 친하게 지내는 편이고 또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막역한 사이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했으나 화학회사에서 국제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친구인데 동북아시아 정치와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으며 각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흐름의 맥을 정확하게 꽤뚫고 있는 친구다. 지난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당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중 그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 자네가 생각하기에 지금의 한국은 과연 여성대통령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이나 ? " 당시 박근혜의 후보당선은 때놓은 당상이고 반드시 그리 될거라 확신하고 있는 나에게 그의 그런 질문은 어리석게 들렸음을 고백해야 겠다. "당연히 준비가 되어 있지. 지금의 국민들은 진보세력의 허황된 논리와 경제의 불안함 그리고 아마츄어식 정치를 펼치고 있는 집권세력에 염증을 느끼고 있기에 현실적이면서도 보수적 정치관을 가지고 있고 깨끗한 이미지의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주저없이 선택할 거라고 봐. " 이런 나의 대답을 들은 그 친구는 머리를 흔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 아니, 절대 자네의 기대대로 되지 않을거라고 난 보고 있어 ." 내 기대에 찬물을 붓는 그의 말에 의아해 하며 바라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 한국보다 더 정치적으로 개방된 미국에서도 힐러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희박해. 아직도 그녀를 정치인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여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 "그런데 한국은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고 보여지거든. 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 한국인들중에 아직은 여성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것에 대한 반감이 존재한다는걸 느꼈고, 박근혜와 경쟁관계에 있는 전 서울시장이 그런 한국인들의 보수적 시각을 이용하지 않을리가 없지. 겉으로는 그런점을 드러내놓고 지적하지는 않더라도 내부적으로나 뒤에서 십분활용하게 될거라고 보네. 그 사람도 한국인들의 그런 시각을 모를리 없을테니까. 내가 장담하건데 자네가 지지하는 그 여성정치가는 이번 대선에서는 힘들거네. 아직은 한국사회 내부에 보이는 여성정치인에 대한 불쾌함이 외국인인 내게도 보이고 있으니까. 아마 다음을 기약하는게 좋을걸세. 국민들이 더이상 그녀를 여성으로 바라보지 않고 한 정치가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금보다 더 많아 질때까지 말일세. " 박근혜의 후보당선 가능성을 털끗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던 내게 있어 그의 그런 분석은 그리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나같이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사람도 박근혜를 단순한 여성 정치가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 말해 뭐하랴 하는 생각에 말이다. 허나 내 그런 확신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결국 박근혜는 경선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녀는 이명박에게 여론조사에서 밀려 후보당선에 실패했고 대한민국은 그렇게 당선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난 그 미국인 친구앞에서 할말을 잃었고 그의 정확한 정치적 분석에 경의를 표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그때 까지도 박근혜가 실패한건 그녀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단순히 경쟁세력의 선거전략과 부정직함에 밀려 그리된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런 그를 최근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술잔이 오가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간후 항상 그렇듯 그와 난 또다시 미국과 한국의 정치적 흐름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다. 지난 경선당시 그의 예측에 반박을 했던 내 모자름에 대한 사과를 하자마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실망할거 없네. 다음 대선에서는 자네가 지지하는 정치가가 당선된 가능성이 보다 많아질테니까 " 지난 경선과 대선을 거치며 대한민국내에 존재하는 정치적 후진성에 대해 자괴감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그의 그런 확신이 그저 달갑게만 들리지는 않았고 박근혜의 당선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에는 대선이 아직 5년여나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정치는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 당장 몇일 앞의 일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지난 경선당시를 돌아보면 5년뒤를 확신하기에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은 내게 아직도 버거웠다. " 한국인들은 이번에 큰 교훈을 하나 얻은것 같더군. " 뜬금없는 그의 말에 내가 잠시 말이 막히자 그는 거침없이 그의 생각을 내게 쏟아냈다. " 정치란 말로 하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는걸 말이야. 그리고 정치적인 약속에 현혹 되기 보다는 그 정치인의 과거 행보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는것도. 장미빛 약속 보다는 현실적으로 이룰수 있는 만큼의 약속을 하는 정치인이 보다 나은 정치인이라는걸 깨달은거지. 그점에서는 박근혜가 다른 정치인들 보다 유리하다고 봐." " 허나 장애는 아직 존재해. 과연 너희 한국인들은 여성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 힐러리도 오바마에게 경선에서 진게 여자라는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말이야. 하지만 힐러리의 한계점은 박근혜와는 다르지. 힐러리는 여성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속에 보여지는 강인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남성정치인들 보다도 더 억세고 강한 정치적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바람에 남성이면서도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를 보여준 오바마에게 밀린거라네. 대중은 편견이 있다 해도 균형을 갖춘 정치인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거든. " " 이제 미국 정치의 시험대는 인종간의 벽이지. 과연 미국인들은 유색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준비가 되어있느냐가 관건이고. 나도 이점에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네. 한국의 현실과는 달리 미국의 선거판은 국제적인 이슈나 주변정세에도 영향을 많이 받게 되거든. 911사태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진다거나 미국이 관련된 전쟁이 지구상 어딘가에서 벌어진다 거나 하는 그런 여건들이 유권자의 선택을 결정짓는다는 말일세. " 그의 말을 듣고 나자 난 한국인들의 정치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었다. 과연 우리는 여성대통령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인가 ? 내가 아무리 박빠라고 자부하며 이제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한 국가의 통치자로 선택될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다닌다 한들 정말 대한민국은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라인가 ? 우리들 박빠는 심한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박근혜니까, 그녀의 정치적 철학과 애국심은 다른 정치인들과는 급이 다르고 타정치인들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자만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 미국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난후 부터 난 내 주변인들을 만나 정치적인 문제를 논할때 마다 정치적 논리와 정치인의 질과 자격을 논하기에 앞서 여성도 대통령이 될수 있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논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 아직도 여성이 대통령으로 부적합 하다는 편견을 가진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는것에 대해 놀라고 있다. 아무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명품 정치가 라고 하더라도 우리들 박빠들은 한국인들의 저변의식속에 흐르고 있는 여성 정치인에 대한 편견과 먼저 싸워야 한다. 박근혜를 여성으로 보지 않고 정치인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 질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쩌면 다음 기회에도 뼈저린 회한의 눈물을 뿌려야 할지도 모른다.(서라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