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못 할 일이 뭐가 있니, 하늘에 별도 딸 수 있단다! - 아버지를 회상하며 - “아버지 눈이 너무 많이 와요. 이래서 갈 수 있겠어요?” 중학생이던 나는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걸어가느라 헉헉 거리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천의 양정여자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이천에는 피아노를 가르칠 교사가 없기 때문에 수원까지 레슨을 배우러 다니던 즈음이었다. “눈이 온다고, 해야 할 공부를 안 할 수 있나.” 아버지는 힘들어 하는 내 손을 잡고 더욱 힘을 내어 이끌었다. 결국 좀 늦긴 했지만 아버지와 나는 피아노 선생님께 도착하여 레슨을 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돌아오는 길 역시 눈길로 인해 힘들었지만 수원에서 이천까지 아버지를 따라 오는 길은 힘들었던 기억보다 어린 마음에도 배우는 기쁨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아가는 기쁨이 더 컸다. 당시 이천에는 피아노가 있는 가정집도 드물고 피아노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도 전무했다. 그런 시골에서 나는 우연히 성당에서 신부님이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보고 매료되어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했으니 여느 집 같았으면 어린 딸의 철없는 소리라고 치부해 버렸을 텐데 교육열이 높았던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수원으로 서울로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지역으로 찾아다니며 내가 피아노를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고 채찍질 하여 전공까지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나선 나의 꿈을 꺾지 않으시고 각 지역으로 피아노 선생님이 계신 곳을 찾아 레슨을 받게 해주셨던 아버지. 진보적인 철학을 가지고 계셨던 아버지는 늘 여자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가야 하고, 남자와 다를 게 없다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공부하면서 힘들어 할 때면 아버지는 늘 내게 이렇게 말해 주셨다. “사람이 해서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니? 노력만 한다면 하늘의 별도 딸 수 있단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 말씀은 내게 힘이 되고 약이 되었다. 발이 푹푹 잠기는 눈길을 견디고 가서 배움을 얻어야 하듯이 인생도 노력 없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아버지를 회상하며 다시 되새긴다. 2008년 9월1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년이 되는 날이다. 이천에서 법무사이셨던 아버지(고 박석호)께서는 나의 초․중․고등학교 내내 육성회장을 맡으시고 평생토록 많은 활동을 하셨다. 생업이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역과 학교를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자라며, 우리 네 남매는 많은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물론 크나큰 가르침을 가슴에 안고 자랄 수 있었다. 요즈음도 “선친의 성함이 박자 석자 호자입니다.”하면서 이천에서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며 어르신들은 나를 다시 한 번 봐 주시고 반가워해 주신다. 아버지는 우리 네 남매뿐만이 아니라 고향 사람들에게도 아직 살아있는 이름임을 느끼면서 또 얼마나 아버지의 그늘이 감사하고 그리웠던가. 그러나 내가 정말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것은 남들에게 보이는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보여 주신 가르침 때문이다. “사람은 배움도 공부도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을 키워준 곳을 위해 다시 되돌려야 하는 거다.” 지금에 내모습은 아마도 아버지의 그런 가르침이 나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배움에는 남녀가 없고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가르침, 그리고 배움도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와 나라을 위해 환원해야 한다는 가르침 말이다. 아직 많은 것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길을 걸어가고 싶다. 그리고 인생의 후배들에게도 특히 여건 때문에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아버지가 내게 해주었던 그대로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사람이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늘의 별도 딸 수 있다!” |